[헨리X슈미츠] 개와 늑대의 시간

“자네는 사람을 쏴본 적이 있나?” 청년의 모습을 한 녀석의 얼굴에 머뭇거림이 묻어 나왔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외모를 한 녀석이라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그 녀석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아이였다. 어느 정도 차이냐고 묻는다면, 뱀과 토끼 정도의 차이랄까. “경찰 대원이 된 이상,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에리히의 붉은 눈이 동그래졌다. “과잉진압이다 ...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동그라미 같기도 하고 네모 같기도 한 도형들이 빙글거렸다. 몽롱한 기분으로 눈을 뜨자 저택의 방 안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몽롱한 기분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나셨군요.” “!”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물 먹은 솜마냥 축 늘어진 몸은 아무...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부터 헤르더와 슈미츠, 그리고 하펠르텐스가 경비 대장, 집사 헨리 이렇게 넷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슈미츠가 간략히 범인의 요구사항을 요약했다. “범인의 요구는 명료합니다. 우선 돈을 가방 하나에 넣어 분수대로 가져올 것, 그것을 가져오는 자는 혼자 일 것, 주변의 매복은 아무도 없을 것. 이 중 하나라도 어긴...

왕실 별궁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헤르더의 말대로 굉장히 지루했다. 예법은 어찌나 까다로운지 슈미츠는 혹여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린 채 거진 한 시간여를 벌서듯 서고 무릎 꿇고를 반복했다. 훈련생 때 받았던 얼차려보다 더했다. 지겹고 힘든 시간이 드디어 끝나고 폐하께서 퇴장하셨을 때부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간단한 다과나 샴페인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

“아, 살 거 같다.” 식사를 마친 슈미츠는 편히 쇼파에 기대었다. 그가 따라놓은 주스까지 다 마시고 나자 그제야 자신이 너무 늦게 일어났다는 것과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님이 퍼뜩 떠올랐다. 서둘러 간단히 씻은 뒤 문을 나서 옆 방으로 향했다. 노크를 하려 손을 드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 안에서는 헤르더가 아닌 하녀가 나왔다. 아마 방안을 청소했...

똑똑 노크소리에 슈미츠는 눈을 떴다. 왠지 어제도 같은 상황이 있었던 것 같아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했다. 어제 방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 입지 않고 그냥 소파에서 잠들었던 것 같았다. 똑똑 다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마른 세수를 한 그녀는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무슨,” “아침이라뇨. 벌써 점심 시간 입니다.” 열린 문 사이로 모습을 보인 건 어제 본 ...

슈미츠는 거의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마주한 순간 모든 일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지만 자꾸 시선이 검은 안대를 둘러맨 그의 오른쪽 눈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왜 다친 거지? 이제 오른쪽 눈으로는 못 보는 건가? 내뱉지 못하는 질문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통증이 없어 보이는 ...

운이 좋았다. 빅터가 헨리에게 한 말이었다. 만약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장담 못한다는 말이 있은 지 한 달 후, 그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행운의 여신의 가호라는 말과 함께. 그는 오른쪽 눈이 있던 자리에 손을 얹었다. 까슬한 붕대의 촉감이 따뜻했던 피부를 대신하고 있었다. ‘행운의 여신이라.’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런지도 몰랐다. 그녀가 있...

갤러리 스포 성향 있어 빼놓았던 부분 넣었습니다. 타앙-!!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인두로 눈을 지지는 것 같은 감각 뒤로 엄청난 격통이 따랐다. “으아악-!” 헨리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은 땀으로 축축해진 몸에 긴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왔다. 어두운 방 안에는 한 동안 그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여전히 화끈대는 오른쪽 눈 부근에 오른손을...

상황이 어찌되었건 간에 창살이 있는 감옥은 대화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기에 일단 셋은 사무실로 이동했다. 어찌어찌 자리에 앉긴 했지만 헤르더는 여전히 헨리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고 슈미츠는 약간 귀찮은 기색을 내뿜고 있었으며 헨리는 그 사이에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뭐 해주면 되는데?” “아니, 잠깐 후배님. 얼마나 때...

순간 튀어 나가서 저 애송이들을 다 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이미 그는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말아먹은 경험이 풍부했기에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그는 근접전투는 젬병이었다. 저격이라면 또 몰라도. 하지만 경찰서 앞에서 총질이라니. 와서 잡아가라고 시위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가 속한 조직, 아이깁투스는 현재 작센에 잠입...

결국 그녀는 명령불복종으로 영창에 들어갔다. (그의 말에 따르느니 차라리 명령불복종으로 처벌을 자처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헤르더는 골치가 아팠다. 오랜만에 키우는 맛이 있는 신입이었다. 순간적인 판단력도 뛰어났고 근접 격투 실력도 상당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배워내는 근래에 없는 유망한 후배님이었다. 하지만 용의자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