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For return

‘대체 누가…’ 크리스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방안을 서성였다. 은희의 진술서를 거의 빼앗듯이 받아 본 바로는 그들은 애초에 스승님을 해칠 의도는 없었던 듯했다. 스승님의 목숨을 노렸다면 침실로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작업실로 들어갔고 왜인지 요란하게 창문 깨지는 소리를 냈다. 사일런스 마법은 2클래스의 기초 마법. 에린도 식은 죽 먹듯이 시동할...

어찌된 일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발치로는 검붉은 액체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위로 종이들이 이리저리 떨어져 있었다. “아…. 아버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겨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께서는 바닥에 엎드려 계셨다. 아니, 쓰러져 계셨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스쳐 들어왔다. 커튼 사이로 밝은 두 개의 달이 보였다. “아버지.” 다시 한번...

툭- 발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들고 있던 랜턴을 바닥으로 가져가자 무언가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감시역으로 같이 들어온 첸 사람은 아버지와 드래곤들을 살펴보는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발로 모래를 밀어보니 네모난 돌판이 있었는데 옆과는 달리 조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 첸 사람의 눈치를 계속 보며 살살 그것을 밀어내자 작은 틈이 있었다. 안에는...

고대유적

속이 울렁거렸다. “은희, 괜찮아?” 에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우리는 2번의 위프로 이동해서 유적 앞에 도착했다. 첫 번째 워프 후에는 그래도 견딜만한 정도였는데 두 번째 워프가 끝나고 나자 뱃멀미를 하는 것 마냥 속이 울렁거렸다. “워프도 제대로 못하는 촌뜨기를 어디서 데리고 와서는…” “쟤가 마지막 인원이라며?” “바튼 님의 양녀래.” 정신...

궁금한 것이 많은 밤이 지나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이제 유적에서 주문들이 발견된다면, 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아버지와 마차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던 시종에게 안내를 받아 어떤 홀에 도착했다. “은희야, 난 폐하를 먼저 뵙고 들어가마. 먼저 들어가 있으렴.” “네.” 홀로 홀 안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모여있...

“아, 정말 굉장했다니까. 너희도 봤었어야 해.” 크리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빡빡했던 면접이 끝난 후 오랜만에 에린의 별장에 다 같이 모였다. “정말 우리한테까지 숨기고!” “맞아, 너무해. 크리스한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에린의 입이 비죽 나왔다. 루틴은 옆에서 우는 시늉 중이다. 에린과 루틴에게도 비밀로 한 이번 건이 아무래도 불만인 ...

덜컹 엉덩이가 한차례 들썩거렸다. 비포장 도로 위의 마차, 그 흔들림은 알아서 상상하길 바란다. “……..” 난 말없이 내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마주 앉은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중히 물어왔다.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흔들려서…” “금방 도착합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네.” 다시 마차 안은 침묵이 이어졌다. ...

털썩- “아아 피곤하다.” 밤이 되고 나서야 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하루 잤다고 금세 친숙해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우리는, 아니 정확히 나와 바튼 씨는 그 뒤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문맹 커밍아웃에 당황한 듯 했지만 역시 연륜이라는 건 무시 못하는지 그는 빠르게 정신을 다잡았다. 당분간 시간이 날 때마다 그가 이곳에 들러 나에게 책의 내용을 듣기...

똑똑- 내가 눈을 뜬 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였다. 잠시 눈을 깜빡이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으로는 따뜻해 보이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이 있었다. 어제와 똑같다. 어제는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침대에 누워서도 계속 뒤척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잠들은 모양이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우리...

새로운 세계

그 둘은 일단 날 살려주겠다고는 했지만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는 못하는 것인지 어떤 방 하나를 주며 그 안에 가두었다. 그렇다고 묶어둔 것은 아니어서 난 몰래 빠져나갈 볼 요량으로 문을 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바로 들켰다. 몰래 나가는 것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네 번째 시도했을 때에는 나에게 짜증이 났던 것인지 남자가 자꾸 그러면 의자에 묶어버리겠다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넘어지면서 어딘가 부딪힌 것 같았다. 두통에 끙끙대며 어렵사리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어두컴컴한 천장이었다. “뭐, 뭐야 이게-“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띵하고 울렸으나 일단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꾹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저, 여기 중국인가요? 어떻게 된 건지… 회사에도 연...

이동

“네? 중국 출장이요?” 입사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인 나에게 전달된 내용은 중국 출장을 가라는 거였다. “저, 하지만 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제가 가서 뭘 해야 할지……” 미적거리며 망설이는 내 반응에도 부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내가 가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부장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애초에 내 대답이 중요한...